× 소개 조직 연구원 연구현황 발자취 블로그 뉴스레터 ICH TV Jeonju ICH AWARDS ICHNGO
이전 다음
게시판    |    Q&A    |    료실 자료실    |    ICH Forum           
[논문요약] 전주 미나리꽝의 형성과 변천
작성자 : 김호림
작성일 : 2018-08-08
본 연구는 전주 미나리꽝의 형성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그 속에 내재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살펴보는 연구이다. 전주는 미나리의 주요 생산지 중 하나였고,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주 미나리꽝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게 미나리를 팔면서 시작했다. 겨울철에 생산하는 희소성과 일본인들의 식습관이 결합해 비싸게 팔렸고,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 미나리 재배가 성행하면서 중화산동에 미나리꽝이 형성됐다. 이후 전주 도심이 개발되면서 중화산동의 미나리꽝이 사라지고, 평화동, 호성동, 전미동, 삼천동, 이서 혁신도시 인근 등지에 미나리꽝이 생겨나 현재 위치하고 있다.
미나리꽝은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겪었다. 1945년 광복을 계기로 주 소비층이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었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 되었다. 전주의 인구증가와 도심 개발로 인해 미나리꽝의 위치가 계속해서 변했다. 여러 개로 분할되어 있던 생산자 조직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하나로 통합됐다.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물가 상승, 직업관 변화 생겼고, 그 결과 미나리꽝에서 일하던 한국인 남성들이 사라졌다. 한국인 노동자들 대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나리꽝에 고용되어 일을 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국적도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바뀌었다.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동남아시아인들이 채웠다. 술 향상과 농기구의 발전은 작업의 효율성 증대시키고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비료의 사용은 이모작을 가능하게 만들어서 농가들의 수익을 높여주었다.
미나리꽝의 사회문화적 의미는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미나리 재배 농민들은 전통생업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둘째는 공동체성이다. 미나리 생산 농가들은 원활한 판매, 유통, 생산을 위해 조직을 결성하고 유지해왔으며, 시간을 거치면서 해체와 통합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미나리 재배 농가들이 하나로 규합하면서 조직력과 활동성이 강화됐다. 셋째, 미나리꽝은 전주의 사회적 약자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구조에 놓여있던 사람들을 고용했고, 그들이 경제적자립을 이루는데 일조했다. 넷째, 전주 미나리꽝은 전주의 외곽에 위치하며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토양과 대기, 생물 등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201

 댓 글    입 력